번아웃 증후군, 우울증과 다른 것인가?
요약
번아웃 증후군은 충분한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속적 업무상 스트레스에 노출된 결과 정서적 소진, 비인격화, 냉소주의, 직업적 기능의 감소 등을 나타내는 심리적 상태이다. 의료인을 포함한 다양한 직종에서 흔하게 나타나며, 그 증상과 특성이 우울증과 상당한 관련성을 보인다.
아직까지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개념, 정의, 진단이 확립되지 않아 과연 우울증과 다른 상태인지, 우울증으로 진행하기 전 단계인지 등에 대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번아웃은 업무 환경적 요인에 의한 것이고, 우울증은 개인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우울증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여 오히려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서론
번아웃(burnout)은 일반적으로 충분한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속적인 업무상 스트레스에 노출된 결과 지치고 소진된 심리적 상태로 생각되며, 그 개념은 1974년 Freudenberger에 의해 최초로 제시되었는데, 그는 분노, 좌절, 동료에 대한 피해의식, 업무상 과도한 엄격성과 완고함, 우울증과 유사한 특성을 신체적, 행동적 측면에서 업무상 번아웃의 증상이라고 하였다.
번아웃 증후군은 특히 의료인력에서 중점적으로 연구되어, 해외 연구에서는 전체 의료인력 중에는 약 30-50%, 간호사 중에는 10-70%가 번아웃 증후군에 해당하였고, 간호사의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전세계적 연구에서는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병률이 높았다. 이 외에도 번아웃 증후군은 교사, 사회복지사, 간병인 등 다양한 직종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점차 번아웃 증후군에 의한 정신심리, 직업기능, 경제적 손상 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번아웃 증후군의 개념과 이를 별도의 질환으로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정의된 정신질환이라고 주장하며, 일부는 그 진단 기준, 이론적 근거, 평가와 측정의 어려움, 임상적 유용성의 부족 등을 이유로 이를 부정하고 있다. 이에 이 글에서는 특히 의료인에서의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중심으로 최근의 논의의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번아웃의 개념과 원인
Freudenberger는 번아웃 증후군의 3가지 주요 차원(dimension)을 정서적 소진, 비인격화 및 냉소주의, 개인적 성취감 감소로 정의하였고, 이 세 차원은 정서적 고갈 또는 업무로 인한 정서적 긴장감과 신체적 탈진으로 시작하는 연속선상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정서적 소진을 경험하면 업무에 대해 냉담하고 무관심해지며, 업무 중에 발생하는 상황에 더 이상 몰입할 수 없게 된다. 정서적 고갈이 심해지면 비인격화와 냉소주의가 발생하고, 업무와 직장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며 업무에서 분리된 느낌을 갖게 된다.
Maslach 등은 이와 유사하게 번아웃을 탈진/소진, 비인격화 또는 냉소주의, 직업적 효능감 감소를 포함하는 심리적 상태로 개념화했고, 이러한 증상들은 순차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일단, 업무상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그 요구에 대처하기 위해 자원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점차 소진된다. 이후 추가적인 자원 고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비인격화, 냉소주의와 같은 형태로 업무와 환자 혹은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로부터 감정적으로 멀어지게 한다. 마지막으로, 지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어 자신의 대처 노력이 업무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점차 직업적 효능감이 감소하게 된다.
직무 요구-자원(The Job Demands-Resources, JD-R) 모델은 소진의 두 가지 핵심 요소(소진과 냉소주의)가 의료 외의 다른 직종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번아웃에 대한 연구를 일반화 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이 모델은 (1) 과도한 업무 요구에 노출되면 만성적인 탈진을 느끼게 되고, (2) 자율성, 피드백, 사회적 지원, 성장 가능성과 같은 필요한 직무 자원이 부족하면 점진적으로 업무에서 물러나 냉소주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JD-R 건강 손상의 과정은 번아웃이 결국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로 이어질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여러 메타 분석 연구는 대체로 JD-R 모델을 지지하고 있다.
번아웃의 예측 요인
지금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업무 관련 소진 위험 요인은 6가지 주요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1) 과도한 업무량 또는 업무 요구,
(2) 업무상 자율성 부족,
(3)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 외적 및 내적 보상, 또는 보상이나 인정의 부족,
(4) 직장 내 사회적 통합의 부족(예를 들면 지지, 친밀감, 팀워크 등),
(5) 직장 내 불공정이나 정하고 존중의 부족,
(6) 개인적 가치와 직장의 가치 사이의 불일치.
이러한 업무 관련 특성 외에도 일부 개인적 위험 요인도 번아웃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메타 연구에서는 신경증적 특성(neuroticism), 내향성, 성실성이나 우호성의 부족과 같은 일부 성격 특성이 번아웃과 연관되어 있었다. 특히 신경증적 특성은 탈진과 비인격화 및 냉소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내향성은 직업적 효능감의 감소와 관련되어 있었다.
또한 번아웃은 자존감, 자기 효능감, 낙관주의적 성향,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능력이 낮은 경우, 그리고 더 높은 외부 통제 소재(more external locus of control)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통제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결과는 자율성을 방해하는 업무상 특성이 번아웃의 중요한 원인임을 강조한다. 또한 이러한 결과 중 번아웃 발생에 업무 관련 특성보다 개인의 성격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잠정적인 증거 또한 존재한다는 점 또한 주의해야 한다.
번아웃과 우울증
우울증과 번아웃은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며 일부 증상은 공통적이지만, 두 질환이 정확히 동일한 것은 아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의 공통점으로, 첫째, 번아웃과 우울증은 유사한 임상 양상을 보이며, 번아웃과 우울증의 증상이 개념적으로 공통된다는 것은 두 질환이 유사한 원인을 공유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이는 번아웃이 개념적으로 별개의 현상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학습된 무기력이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과 유사하게 번아웃이 해결할 수 없는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다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이 둘은 무력감, 절망감, 부정적인 정서, 긍정적인 감정의 부재라는 핵심 증상을 공유한다.
이 외의 추가적인 번아웃 증상은 직장에서의 헌신 감소 및 위축, 공격성 및 짜증과 같은 정서적 반응, 흥미, 인지 능력, 인지적 융통성, 동기 부여, 창의성 및 판단력의 저하, 감정 및 사회적 위축, 다양한 생리적 및 행동적 변화를 포함하는 매우 이질적인 양상을 보인다. 사전에 이러한 맥락 없이 이 증상의 목록을 보면 직장에서 발생하는 우울증 증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번아웃을 경험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우울증 증상을 보이며 종종 우울 장애의 진단 기준을 충족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즉, 우울증과 번아웃 증상 사이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으며, 번아웃의 정의에 대한 이질성과 합의의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중복성은 더욱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우울증과 번아웃은 일반적으로 서로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Maslach Burnout Inventory (MBI)를 사용하여 평가할 때 정서적 소진 구성요소는 우울증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으며, 때로는 번아웃의 다른 차원보다 우울증과 더 높은 상관관계를 보일 정도이다. 또한 우울증 평가도구에서 탈진을 평가하는 항목을 제거하더라도 번아웃 구성 요소는 여전히 우울증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관련성이 두 질환의 개념적 공통성을 반영하는 정도는 아직 불분명하며, 이 두 질환이 공존질환으로 연관성을 보이는 지 혹은 공통적 개념인 것인지를 구분하려면 번아웃이 별개의 임상적 실체로서 타당성이 있는지에 대한 개념적 명확성에 대한 정립이 더 필요하다.
셋째, 번아웃과 우울증은 종단적 연구에서도 상호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번아웃이 이후의 우울증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우울증 역시 번아웃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호 연관성은 번아웃이 초기 우울증이며, 점진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 수 있고, 또한 우울증이 업무 경험에 부적응적인 영향을 미쳐 번아웃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또한 우울증과 번아웃의 발병을 유발하는 선행요인은 현재까지 연구에서 다르다고 볼 근거가 불충분하다.
그러나 다른 연구자들은 우울증과 번아웃이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번아웃에서는 체중 감소나 자살 사고는 드물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번아웃은 개인의 삶에서 업무적인 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 반면, 우울증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증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또한 두 개념 사이에 상당한 중복성은 있지만, 근로자가 번아웃과 우울증을 항상 동시에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우울증에 비해 번아웃은 개인과 업무 사이의 관계의 문제로, 순전히 개인적인 증후군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번아웃을 우울증으로 개념화하면 의료인과 같이 번아웃에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군의 개인이 경험하는 고통을 제도적 환경 내에서 적절히 맥락화하지 않고 개인의 문제로 낙인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번아웃, 우울증, 불안의 관련성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는 번아웃, 우울증, 불안이 중복되는 측면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결과는 여전히 이 세 가지 심리적 상태의 고유한 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번아웃과 우울증의 구분은 다양한 요인분석 연구를 통해서도 지지되었는데, 두 개념의 공통된 핵심을 고려하면 두 개념 모두 의미 있는 수준의 특이성을 유지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한 연구에서는 번아웃과 우울증 사이 특성의 차이를 조사하였는데, 우울증과 번아웃을 모두 경험한 1019명을 포함한 연구에서 환자들은 번아웃 증상에 대해서는 명확한 외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던 반면, 우울증에 대해서는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어, 우울증은 본질적인 원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번아웃이 우울증보다는 기능과 자존감 손상이 덜하고, 자살 사고가 적으며 더 희망적이었다. 이외에도 환자들은 번아웃은 무거움과 느림의 느낌이 특징인 우울증보다 불안하고 활성화된 상태처럼 느껴진다고 응답하였고, 우울증에는 무감동증이 있지만 번아웃에는 없다는 것도 또 다른 차이점이었다.
번아웃과 우울증: 그 논란의 의미
번아웃에 대한 관심과 연구 결과들은 문제의 주요 원인으로 개인이 아닌 시스템을 강조하여 낙인 효과를 감소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의 개선은 번아웃에만 국한되며, 불안, 자살 충동, 특히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은 여기에서 제외되었다.
번아웃의 낙인을 없애려는 노력은 번아웃이 개인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번아웃과 우울증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번아웃을 우울증과 동일시하는 것은 책임을 직장이나 시스템으로부터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던가, 업무상 번아웃이 나약함이나 무능력, 심지어 정신 질환의 징후로 낙인 찍히는 것은 문제라는 것인데, 이러한 메시지의 함의는 번아웃이 시스템 차원의 문제인 반면, 우울증은 개인 차원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개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단순하게 이해하기 쉽지만, 많은 연구의 결과와 일치하지는 않고, 우울증과 관련된 오해와 낙인을 지속시키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며, 의료인을 포함한 번아웃에 취약하다고 알려진 개인들의 우울증 예방 및 치료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번아웃과 우울증을 구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많은 논란은 아직 번아웃의 정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한 리뷰에 의하면 182개의 연구가 142개의 서로 다른 번아웃에 대한 정의를 적용하였다.
의료인이 경험하는 문제들이 제도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전제는 개인 수준의 개입이 의료인의 정신건강을 개선하는 데 매우 적은 역할만을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주요 원인이 시스템 수준에 있더라도 개인 차원의 개입이 필요한 질환은 많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석면에 노출되어 폐암에 걸렸다면 석면을 업무 환경에서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지만, 그 질병이 직장에서 유발되었기 때문에 개별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단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의료인의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효과적인 개별 개입에 대한 접근성과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번아웃에 대하여 제시되고 있는 개입은 주로 의료 시스템 수준에서 시행되는 반면, 우울증에 대한 많은 효과적인 개입은 개인 수준에서 시행된다.
안타깝게도 의료인들은 스스로를 우울증이라기보다는 번아웃이라고 생각하고 정신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 개인 차원의 개입을 받거나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의료인의 번아웃과 관련된 연구와 제안들은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번아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선의의 주장은 번아웃과 우울증의 차이를 과장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 결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강화되었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데 대한 장벽이 높아져 의료인의 정신건강을 개선하기 위한 우울증에 대한 치료적 개입은 어려워졌다. 따라서 번아웃에 대한 낙인을 없애기 위하여 과도하게 우울증과의 차이를 강조하여 오히려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기존의 낙인을 강화하는 것은 이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
아직 그 개념, 정의, 진단기준 등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번아웃이 우울증과 다른 상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의 관련성은 여러 연구에서 나타나고 있다. 업무 환경과 시스템 차원의 개선이 번아웃을 예방하고 감소시키는 데 중요하지만, 이와 동시에 번아웃 증후군의 특성과 번아웃 증후군과 우울증 사이의 관련성을 이해하고,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개인에 대한 적절한 정신건강의학과적 평가와 개입을 시행하는 것이 의료인과 그들이 돌보는 환자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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