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계절 변화
요약
우울증은 계절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고, 기존의 우울증이 계절 변화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계절성을 나타낼 수 밖에 없으나, 계절성 기분장애로 인한 고통과 기능의 손상은 적절한 평가와 치료로 예방 및 호전될 수 있기 때문에, 계절에 따른 우울증상에는 더욱 주의 깊은 임상적 관심이 필요하다.
서론
히포크라테스가 계절의 변화가 질병을 유발한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계절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이는 당연한 것인데,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지구상의 빛과 어둠이 변하는 데 적응하도록 되어있고, 짧게는 하루 주기, 길게는 계절 변화에 따라 신체에 주기적 변화가 나타난다 (그림 1). 뇌 역시 이러한 변화를 나타내는 신체의 기관 중 하나이며, 따라서 뇌의 기능에 의해 조절되는 기분도 주기적 변화를 나타낸다.
(그림 1. 생체시계에 따른 우리 몸의 일주기성)
Farhud D, Aryan Z. Circadian Rhythm, Lifestyle and Health: A Narrative Review. Iran J Public Health 2018;47(8):1068-1076에서 인용.
기분의 변화가 극단적인 경우, 계절성 기분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할 수 있는데, 오래 전부터 계절에 따른 기분 변화는 알려져 있었지만, 1984년 노먼 로젠탈에 의해 정식으로 제안된 이후 잘 알려지게 되었다. 로젠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1976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이주하였는데, 그가 살던 요하네스버그와는 달리 뉴욕의 여름은 길고 뜨거웠다. 뉴욕에 도착한 로젠탈은 활력이 넘쳤고,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해냈다. 그러나 가을이 되자, 그는 일이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이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자, 그는 활력을 되찾고 일에 대한 부담도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이를 통하여 그는 일조량과 계절이 기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고 계절성 기분장애를 제안하였다.
계절에 따른 기분 변화는 실제 임상에서도 드물지 않은데, 계절성 기분장애와 같이 특정 계절에만 기분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기존의 기분 증상들이 계절 변화에 따라 악화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계절성 기분장애는 북미 지역의 경우 2-10%, 유럽에서는 1-3%, 아시아에서는 1% 정도의 유병률을 보인다. 그러나 아증후군적(subsyndromal)인 경우를 포함하면 10% 이상의 유병률을 보고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임상 상황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계절 변화가 기분에 미치는 영향의 생물학적 기전을 살펴보고, 그 대표적 예인 계절성 기분장애에 대한 적절한 평가 및 치료 방법을 제시하여 실제 임상 진료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본론
1. 인간은 계절성 동물이다
비록 그 정도는 점점 감소하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계절 변화에 따라 생식 행동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은 아직도 계절성을 보인다. 계절의 변화는 일조량의 변화를 의미하며, 이는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인지기능의 변화를 유발하고, 또한 신경내분비계 조절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록 그 정도는 줄었지만, 인간의 생식행동에는 년 단위의 주기가 관찰되며, 뇌의 세로토닌이나 도파민과 같은 뇌의 신경전달물질도 일조량이나 계절에 따른 변화를 보인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에서도 기분, 에너지, 공격성, 수면, 식이, 일주기성, 체온, 자율신경계 기능, 대사 기능 등에서 이러한 년 주기성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실제로, 시계나 자연광이 없는, 시간 관련 자극을 배제한 환경에서 인간의 일주기성을 계절별로 비교한 연구에서는 봄과 가을에는 여름이나 겨울에 비해 일주기가 짧아지고, 봄에는 수면 시간이 가장 짧아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런 환경에서의 실험에서는 수면-각성 주기가 일주기성 체온 주기와 비동기화(desynchronization)되며, 그 정도는 여름에 가장 심하다는 사실 또한 발견되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수면박탈은 항우울효과를 거의 즉각적으로 나타내는데, 수면-각성 주기와 다른 신체적 주기의 비동기화는 양극성장애 환자에서 봄과 여름에 조증 삽화가 흔하다는 사실과도 연관될 수 있다. 이 외에도 주말과 같이 기상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 겨울에는 여름에 비해 평균 24분 정도 더 잠을 잔다, 봄과 여름에 주관적 안녕감(well-being)이 높고, 가을과 겨울에 낮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연구 결과로, 구글에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는 횟수는 겨울에 가장 많았다 (그림 2).
(그림 2. 정신질환에 대한 구글 검색의 계절에 따른 변화)
Wirz-Justice A. Seasonality in affective disorders. Gen Comp Endocrinol 2018;258:244-249에서 인용.
계절성은 유전자의 발현에도 영향을 준다. 백혈구나 지방세포에 있는 4000개 이상의 단백질 부호화 mRNA는 계절에 따라 발현이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 특히 겨울에는 염증성 유전자 전사가 증가하고 심혈관질환이나 정신과적 질환, 자가면역성 질환의 위험성과 관련된 생체표지자가 증가한다.
2. 계절성 기분장애
현재 정신의학적 주요 진단체계에서 계절성 기분장애는 별도의 진단으로 간주되지는 않고 있으며, 우울증이 계절성을 띄고 반복되는 아형으로 구분된다. 대부분의 경우 우울증의 계절성은 겨울에 주로 나타나지만 여름에 나타날 수도 있다.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들은 세로토닌과 같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계에 이상이 있는데,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에서는 여름에 비해 겨울에 세로토닌 전달체(serotonin transporter, SERT)가 5% 가량 더 많아진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여름에는 햇빛에 의해 SERT가 낮게 유지되다가, 가을에 일조량이 감소하면 이에 따라 SERT가 증가하고 그 결과 세로토닌계 활성이 저하되며, 이는 우울증상과 관련될 수 있다.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들은 또한 멜라토닌이 과다 분비된다. 겨울에 일조량이 감소하면 멜라토닌 생성이 증가하는데, 그 결과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들은 졸리고 피곤하다고 느끼게 된다. 상기한 세로토닌의 감소와 동시에 나타나는 멜라토닌의 증가는 일주기성에 영향을 준다.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들은 일조량의 변화에 따라 계절성 일주기성 신호 변동이 커서 이에 적응하기가 더욱 어렵다. 또한 겨울에는 야외 활동이 적어져서 햇볕을 덜 받기 때문에,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들에서는 비타민 D 합성이 적어질 수 있다. 비타민 D는 세로토닌 활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타민 D 부족 자체가 우울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겨울에 나타나는 우울증은 슬픈 기분과 에너지의 저하가 특징적이다. 이런 환자들은 겨울이면 슬프고, 예민해지고, 자주 울고, 피곤해하며, 집중력이 저하되고, 수면 시간이 늘어나고, 에너지와 활동이 저하되고, 탄수화물이나 당분에 갈망을 보여 과식으로 체중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여름에 나타나는 우울증은 식욕 저하, 체중 감소, 불면, 초조, 불안 등이 특징적이며 폭력적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계절성은 개인에 따라 심각도에 차이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에서는 경미한 정도의 계절성 기분장애 증상을 보이며 이러한 경우는 아증후군적 계절성 기분장애(S-SAD)라고 하며, 겨울에 나타나면 “겨울 우울(winter blues)”라고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에서는 계절성 기분장애가 일반적인 우울증처럼 기능적 문제를 유발할 정도로 심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자살 위험성 또한 높아진다.
3. 계절성 기분장애의 평가
상당수의 사람들이 계절성 기분장애로 인하여 자신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계절성 기분장애나 아증후군적 계절성 기분장애를 선별하여 적절한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절성 양상 평가 설문지(Seasonal Pattern Assessment Questionnaire, SPAQ)는 로젠탈에 의해 1984년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후향적 자가보고 도구이며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SPAQ는 아직 국내 표준화는 되어있지 않으나, 한국어로 번안된 설문이 일부 연구에서 사용된 바 있다.
SAPQ는 선별 검사 도구로 개발되었으며, 6개 항목(수면시간, 기분, 사회적 활동, 체중, 활력, 식욕)에 대하여 어느 달이 가장 좋은지, 가장 나쁜지 평가하게 하고, 각 항목에 대한 계절에 따른 변동의 정도를 0점(변화 없음)에서 4점(극도로 심하게 변동) 사이의 점수를 매기도록 하여 이를 합산한 총 계절성 점수(Global Seasonality Score, GSS)를 계산한다. 또한 여기에 추가적으로 이러한 계절성 변동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평가하게 한다. GSS가 11점 이상이며 중등도 이상의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는 계절성 기분장애로 의심할 수 있고, GSS가 9-10점이며 경도 이상의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 아증후군적 계절성 기분장애로 볼 수 있다.
4. 계절성 기분장애의 치료
대표적인 계절성 기분장애의 치료에는 항우울제, 광치료, 비타민 D, 심리사회적 치료 등이 있다. 계절성 기분장애는 우울증과 마찬가지로 뇌의 세로토닌계 이상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fluoxetine과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 SSRIs)가 효과적일 수 있다. 캐나다에서 시행한 연구에서는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fluoxetine과 광치료의 효과를 비교한 결과, fluoxetine은 광치료 만큼 효과적이었으며, 경제성은 우월하다고 하였다. 이 외에 bupropion이 계절성 기분장애에 효과적이고 계절에 따른 재발을 방지한다는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Cochrane review에서는 아직 이러한 항우울제들이 계절성 기분장애에 효과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의 근거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였으며, 27%의 환자들이 부작용으로 연구를 중단하였다는 점 또한 지적하였다.
일조량 변화가 계절성 기분장애를 유발하기 때문에, 부족한 일조량을 인공적 빛으로 보완하는 광치료가 효과적임은 잘 알려져 있다. 빛 상자(light box)는 자연광과 유사한 전체 스펙트럼의 빛을 조사하는 기구로, 초가을부터 봄까지 이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빛 상자 앞에 앉아있으면 계절성 기분장애의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빛이 간접적으로 균등하게 비춰지는 “light room”을 사용하기도 한다. 빛 상자를 이용한 치료에서는 자외선을 여과한 10,000 룩스(일반적 실내 조병의 20배)의 백색광을 20-60분간 조사한다. 광치료의 부작용은 항우울제보다는 덜 하지만, 눈의 피로감, 노화에 따른 황반 변성의 증가, 두통, 예민함, 수면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광치료시에는 lithium, phenothiazine계 항정신병약물, 멜라토닌, 일부 항생제 등 광감작성 약물은 비해야 한다. 일부 경우에서 경조증이나 자살 사고가 특히 치료 초기에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기도 하였다.
비타민 D의 부족이 우울증과 관련될 수 있음은 메타 분석에서도 확인되었다. 혈청의 25-hydroxyvitamin D(25-OH D) 농도를 측정하는데, 30ng/mL 미만이면 부족, 20ng/mL 미만이면 결핍, 150ng/mL을 초과하면 중독이다. 비타민 D 부족은 섭취량이 부족하거나 야외 활동이 부족한 경우에 나타날 수 있다. 11월에서 2월 사이에는 북반구의 위도 33도, 남반구의 위도 30도 이상에서는 비타민 D 합성이 되지 않는다.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 중 상당수가 비타민 D 부족을 보이는데, 하루 100,000 IU의 비타민 D를 섭취하는 것이 증상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드물지만, 하루 50,000 IU 이상의 용량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 또한 유의해야 한다.
심리사회적 치료 또한 효과적일 수 있는데, 6주간 부정적 사고 패턴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를 시행한 경우, 30분간 10,000룩스의 광치료를 시행한 것만큼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있었다. 또한 우울증상이 심하지 않은 경우는 탄수화물과 당분 섭취를 제한하고 활동량을 증가시키며,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상담을 시행할 수도 있다.
결론
계절에 따른 기분의 변화는 일조량의 변화에 따라 세로토닌, 도파민, 멜라토닌 등 기분과 일주기성에 영향을 주는 생물학적 변화에 기인한다. 따라서 아증후군적 상황을 보함한 계절성 기분장애는 결코 드물지 않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신의학적 정식 진단으로 정의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러 부정적인 영향에도 관련 연구와 임상적 관심이 부족하다. 이 글에서 제시한 평가와 치료적 제안을 통하여 더욱 많은 계절성 기분장애 환자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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